한국납세자연맹

공공기관으로부터 부당한 행정처분을 당했을 때, 적법한 절차로 이의제기를 해야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다. 무척 중요한 법 상식임에도, 초등학교는 물론이고 최고 학부에서조차 이런 지식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는 곳은 없었다. 무엇이 적법한 절차인지, 어떻게 하면 잘못 낸 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지, 세금 걷는 사람들 입장에서 그런 것들을 교육할 만큼 재정여건이 빠듯했던 걸까.

지난 3월의 학교용지부담금 위헌 결정과 최근 수천억원대의 부담금 환급 조치. 언론과 한국납세자연맹 웹진 등을 통해 이런 단순하면서도 너무 중요한 지식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됐다.

전세계적으로 볼 때 위헌결정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이 금전적 환급을 받게 된 것은 유례가 없는 것 같다.

필자는 이참에 회원들에게도 말하고 싶었던 것 하나가 있다. 몇 년전 자동차 세불복운동 때도 자동차세 위헌결정이 나면, 자동차세를 돌려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많은 납세자들이 볼복운동에 참여했다. 감사원심사청구를 하면 위헌결정시 환급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사실 이때 처음 알게 된 것이다. 납세자연맹 덕분에 이런 고급정보는 이제 상식이 됐다. 학교용지부담금 폐지운동에 대해 아는 변호사에게 물어보니 “글쎄, 그게 가능할까”했던 문제였다. 하지만 연맹이 앞장 서서 해냈다.

대한민국 법률시장에서 이의신청 비용(〓변호사 비용)은 너무 높다. 그러나 연맹은 인터넷을 통해 이의신청서 자동작성 프로그램을 제작, 무료로 공개했다. 네티즌들의 끊임 없는 참여는 뉴스가 됐고, 뉴스는 또 다른 참여를 이끌어 냈다.

문제는 학교용지부담금 납세자 일부가 높은 비용의 소송을 통해 환급을 받 았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4~5만명이 환급대상자라고 한다. 반면 28만여명이 환급을 못받는다고 한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가. 국가가 잘못한 것에 대해 꼭 이의신청을 해야만 돌려 주는 부당함이 내재돼 있기 때문일까. 이런 잠재된 부당함은 사회적으로 이슈화 돼야 한다고 보고, 학교용지 부담금 환급소외자가 환급대상자의 6배에 이른다는 사실을 통해 근본적인 해결의 단초를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본다.

그럼 이런 근본적이고 본원적인 일련의 문제제기는 누가 할 것인가. 자동차세가 헌재에서 합헌판정이 났지만, 나는 불복운동의 실패는 아니었다고 본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같은 논리로 학교용지부담금을 둘러싼 대한민국 납세자와 납세자연맹의 승리는 궁극적인 승리가 아니다.

아직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대한민국 납세자는 단순한 절차적인 권익과 의무 면에서도 절대 평등하지 않다. 이런 근본적이고, 원리적이며 철학적인 문제는 한국의 재정 민주주의를 착근시켜나가는 과제로 도출될 수 있다.

한국인 대다수가 이런 과제를 아직은 자신의 일로 여기지 않고 있다. 하지만 자신에게 붙은 납세자라는 이름의 숙명적 과제를 인식하는 순간, 그는 곧바로 그 일을 자신의 일로 여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한국납세자연맹이 우뚝 서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가야 할 대안의 땅에 닿기 위해, 우리는 납세자연맹이라는 배를 망망대해에 띄워야 한다. 그 배의 주된 동력은 사람과 돈이다.

우리가 패소를 패배로, 승소를 승리로 여기지 않는 것은 우리가 아직 ‘대안의 땅’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급히 배를 띄우자. 배의 스크류를 돌리기 위해 사람과 돈을 모으자. 그래서 제2, 제3의 학교용지부담금을 또 폐지시키자. 이렇게 몇번 경유지를 거치다 보면, 우리 배는 어느새 저 ‘대안의 땅’에 닿아 있을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