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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의료공제의 함정

번호 : 글쓴이 : 관리자 조회: 16592 날짜: 2003/10/07

지난 8월 정부는 세법(稅法)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내년부터 근로자 본인의 의료비 공제한도(현행 500만원)를 폐지한다”는 것을 ‘하이라이트’로 내세웠다.

정부는 이 제도가 시행되면 가난한 근로자들이 큰 사고를 당하거나 중병에 걸려 수천만원의 의료비를 지출해도 정부가 무제한 공제혜택을 주기 때문에 가산(家産)을 탕진하는 일은 없어질 것이라고 자랑했다. 당시 재경부 당국자는 “큰 병이 걸린 근로자에게 재원을 몰아주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무제한 공제혜택’이라는 당근에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소득공제 대상 의료비 기준을 ‘연봉의 3% 초과분’에서 ‘연봉의 5% 초과분’으로 올려버린 것이다.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었음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입증됐다. 예컨대 연봉 5000만원 근로자 가정이 연간 의료비로 200만원을 사용할 경우 지금은 급여의 3%인 150만원을 초과하는 50만원을 공제받을 수 있지만, 내년부터는 ‘5%(250만원)룰’에 걸려 한푼도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불이익을 당하는 근로자가 의외로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국정감사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그동안 의료비 공제혜택을 받아온 직장인 113만명중 71만명(63%)이 ‘5%룰’에 걸려 공제대상에서 빠지게 된 것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자, 재경부 관계자는 그제야 “올해 저소득 근로자에 대한 근로소득 공제를 확대했기 때문에 (줄어든 근소세를 확보하기 위한) 의료비 공제 축소가 불가피했다”고 실토했다. 내년도 세수(稅收)가 너무 줄어들지 않도록 의료비 공제 대상을 축소했다는 얘기다.

재경부는 왜 처음부터 이런 사정을 솔직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쉬쉬했을까? 적당히 넘어가면 국민들이 끝내 모르거나 눈감아줄 것으로 착각했던 것일까?

(윤영신·경제부기자 ysyoon@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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