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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와 처음 인연이 닿았던 게 언제였더라...
그러니까... 때는 바야흐로 가을...
거리에 줄지어 선 가로수들이 노란빛으로 물들어 가던 작년 시월, 다른 이들이 짙어진 가을풍경을 뒤로하고 바쁜 출근길을 재촉하던 시간에 난 관악산 자락에 자리 잡은 조그만 도서관으로 달려가곤 했다.
지금껏 바삐 살아왔으니 쉼표 하나쯤 찍어두고 가도 좋다고 오기를 부려놓고도 겨우 한 달을 넘기곤 인터넷 취업사이트를 뒤적이던 무렵이었다.
조조영화와 평일의 도서관을 오가며 주문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중얼거리곤 했었다. “괜찮다. 괜찮다.” 그저 왠지 나만 세상에서 쑥 빠져나와 다른 공간속에 살고 있는 듯한 씁쓸한 느낌도 지금껏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어서 쉴 줄 또한 모르는 거라고 애써 위로하면서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 도장 찍 듯 드나들던 한 사이트에서 자꾸만 눈길이 가는 구인광고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며칠 뒤 내 손전화기에 곱게 찍힌 부재중 전화 1통.
“납세자 연맹입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내 머릿속에서 번개처럼 초상화 한 장이 그려진다.
20대 초반의 여자. 가냘픈 체구에 긴 생머리. 너무 과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패션 감각.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대부분의 사장님들이 선호하는 조신한 여직원~
더 간단히 말하자면, 나와는 전혀 다른 여자…정도??
“부재중 전화 받고 전화 드렸는 데요~. ”
“ 아. 네 그러세요. 실례지만 존함이 어떻게 되세요? ”
전화선 너머의 그녀와 면접날짜와 시간을 약속하고 통화를 끝낸 나는 컴 앞에 앉아 연맹 홈페이지에 접속, 약도를 확인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그 순간의 설레임은 거리에 단풍대신 꽃망울이 자리 잡은 지금까지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그러나 세상 이란 게 어디 만만한 녀석이던가.
난 신문 한 귀퉁이에 실린 스토쿠에 시선을 박으며 머리를 굴릴 때처럼 오만가지 생각을 하게 되니 단단히 각오를 하고 입사했건만 시민단체라는 곳은 생각보다 더 힘든 곳이었다.
교육기간을 끝내고 회원관리팀의 간사로 일하게 된 나는 예상과는 조금 다른 업무에 당황스러움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일부 회원들의 이야기 이긴 하지만, 학교용지 부담금의 신청방법과 환급시기에 대한 상담을 할 때는 상냥하기 그지없는 회원이 후원안내 하는 부분에 가선 태도가 돌변하곤 했다.
“아..네... 호호호...
뭐 연맹에서 수고한 게 있나여 다 나라에서 환급해 주는 건데~.”
이 정도에서만 끝내준다면 감사할 일이다.
“ 위헌판결 받기까지 연맹이 지난 5년간 소송을 진행하면서 시민활동 해왔는데요. 환급 잘 받게 되시면 후원도 꼭 부탁드리……”
이쯤에서 들려오는 친숙한 기계음...
“....뚜뚜뚜뚜뚜...뚜뚜...뚜뚜...”
이건 아닌 거 같은데. 입사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아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하는 회원들의 냉대. “휴~”하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곤 하던 어느 날, 업무용으로 자주 사용하는 메신저로 친근한 메시지 하나가 날아든다.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으신가 봐여?’
내 맞은편에 앉아있는 조신한 그녀다~!
짧은 한 문장 속에 그래도 날 걱정해 주는 사람이 이 사무실 안에 존재한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언제 그랬냐는 듯 피식 웃음이 감돌았다.
아직 모든 것이 낯설어 겉돌기만 하는 신입을 챙겨주려는 그녀의 마음이 깊이 와 닿았음은 물론이다. 그녀는 그 후에도 몇 번씩 내가 힘든 기색이 있으면 친근한 메시지를 날려 웃음 짓게 만들어 주곤 했었다.
내가 목소리만 듣고 그려보았던 상상속의 초상화에서 톡 튀어나와 이제 현실 속 내 맞은편에 자리 잡은 그녀는 알면 알수록 재밌는 구석이 있다.
이거 순대만 봐도 “어머 이런 걸 어떻게 먹어요~~”라고 할 것 같은 외모를 갖추고는 나도 먹지 못하는 각종 보양식을 즐겨먹는단다. 뜨아~ 신(神)은 참 재밌는 분이시다.
거기다 6시 정각에 급히 뛰쳐나가는 그녀의 뒤통수에 대고 “중요한 약속이 있는 거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한다.
“ 배고파서요~~ 빨리 집에 가서 밥 먹으려구요~”
(회장님~~ 간식비 좀~~ ㅡ.ㅡ;;)
최근에 한의원을 드나들던 그녀는 어느 날 무척 고민스런 표정으로 이런 대사를 곱게 날려주셨으니.
“ 제 체질에는 고추가 안 맞는다고 하네요. 그럼 고추장도 먹지 말라는 건데. 근데 어쩌죠~ 오늘저녁에 닭발 해놨다고 엄마가 일찍 오라 하셨는데 닭발을 물에 헹궈 먹어야 하는 걸까요?”
.....@.@ ... !@#$%^&*
이제 제법 친숙해져 개인적인 대화를 더 많이 나누게 되면서는 하나씩 발견하는 그녀의 새로운 매력에 흠뻑 빠져들곤 한다.
(콜롬버스가 뭐 별거인가... 신대륙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우리주변 어디에나 있다~!!)
그녀와 나는 제법 나이차이가 나지만 인생의 긴 여정 속에 그 정도야 뭐 대수겠는가.
그저 이렇게 배려할 줄 알고 일 척척 잘해내고 20대다운 엉뚱 발랄함도 겸비한 그녀를 알게 된 게 감사 할 뿐이다.
햇살 따사로운 사월이다.
사람들은 오늘도 분주히 광화문 사거리를 오가고 난 그 한 공간에서 회원들과의 시간을 갖는다. 때론 짜증내고 말없이 수화기를 내려놓는 회원이 있기도 하지만 “감사하다”고 “연맹이 있기에 살맛이 난다”며 “앞으로도 열심히 일해 달라” 부탁하는 회원들이 있기에 힘을 얻는다.
그리고 내 맞은편 자리엔 변함없이 나의 든든한 후원자 그녀가 있다.
난~이 여자가 좋다.
봄.빛.싱.그.러.움.을.품.고.사.는.그.대 최. 자. 영
<한국납세자연맹 회원관리팀 최주은 간사>
 댓글[9] |
| queen902 [2009-04-09 14: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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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빛 싱그러움을 품고사는 자영님 만큼이나 주은님도 재밌는 분 같으세여~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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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hlee [2009-04-09 14:4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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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세자연맹 간사님이 글을 참 잘쓰시는군요..아주 짧은 소설을 읽은 느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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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rangejuice [2009-04-09 16: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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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자영 간사님의 사진도 보고싶어요~ 히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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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mkim0216 [2009-04-09 16:5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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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분위기가 참 가족같이 따뜻해보이네요~ 부럽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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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aku [2009-04-09 22: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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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 보니 최자영 간사님이 진짜 궁금하네요. 최자영간사님은 언제 글쓰시나요? 언릉 올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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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sj245 [2009-04-10 09:2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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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빛 싱그러움을 품고사는 자영님 어떤 분인지 궁금하네요~~
저도 연맹에서 일하면 안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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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goa [2009-04-10 12:5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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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자영 간사님. 데이트 신청쇄도 예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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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o2269 [2009-04-15 22: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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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동료 만나서 좋으시겠어요~~직장가는 발걸음이 가볍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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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ench902 [2009-04-16 17: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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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우리 령이는 인기도 많오~~^^ 사랑한다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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