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뉴스를 듣고는 주말 내내 몹시 앓았다. 노사모 회원도 아닌 필자가 왜 크게 앓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일간신문 국회 출입기자 시절 노무현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밀착 취재하던 때였다. 서울 명륜동 당시 노무현 후보의 집에 초청받은 정치부 기자들이 그리 넓지 않았던 마루에 십여명 남짓 둘러 앉아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하는 자리가 있었다.
그날은 노무현 당시 대통령 후보의 근성을 발견한 날이었다. 보수언론들이 연일 말꼬투리를 잡고 온갖 ‘자질론’에 심지어 사람 됨됨이까지 운운하면서 시시콜콜 할퀴고 있던 터였다. 그런 엄중한 시점에 노무현은 기자들을 죄다 자기 집으로 불러 술을 함께 마시고는 듣기에도 민망한 쌍소리를 해댔다.
술이 좀 거나해서인지 몰라도, 나는 그 쌍소리와 욕지거리가 어지간히 정겨웠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후보 당시 그런 방식으로 언론과 정치권, 기업, 시민단체를 망라해 권위주의로 상징되는 당대의 기득권층을 향해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쌍 욕을 해댄 사람이다.
언론인인 필자의 오금이 잠시나마 저렸던 이유는 언론을 향한 그의 통렬한 비난을 들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후보의 욕지거리는 당대 한국의 언론인들에게 “어이, 자잘하게 할퀴지 말고 제대로 한번 긁어봐라, 이 비루하게 먹고 사는 놈들아!”라고 들렸다.
Ⅱ.
그가 대통령 탄핵소추 등의 국면을 넘길 때 친한 기자들끼리는 “전 국민들을 상대로 멋지게 사기를 치는군”이라며 비아냥거렸던 기억이 선하다.
아무튼 그는 단순한 물리적 죽음으로 그치지 않는 ‘서거’라는 장엄한 표현의 정치적, 역사적, 감성적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죽음 앞에 가장 좋은 애도를 한 사람은 서울대 법학교수인 조국 교수다.
평소 매우 존경하는 지식인답게, 조국 교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필자와 가장 비슷한 감성과 이성으로 추도했다. 조국 교수의 추도사에서 필자의 마음과 닿는 대목만 간추려 본다.
“비주류 정치인으로 어려운 정치역정을 걸으면서도 자신을 지탱했던 자부심에 금이 가고 말았다.”
그렇다. 그는 이른 바 ‘비주류’였다. 말이 쉽지, 한국에서 ‘비주류’를 보는 눈은 얼마나 신선한가. 이른 바 ‘주류’들은 처음엔 춤추는 곰을 보듯 하다가, 점점 심각해진 얼굴로 떼를 지어 ‘비주류’를 이지메 하다가 마침내 무참히 학살한다.
그래서 주류는 비겁하고 잔인한, 멋대가리 없는 놈들인 반면 ‘비주류’는 돋보이는 캐릭터일 수밖에 없다.
“‘죽은 권력’을 물고 할퀴며 ‘산 권력’에 잘 보이려는 각 분야의 하이에나들은 떼를 지어 덤벼든다.”
조국 교수의 상황파악 능력은 물론 그 표현조차 빈틈없이 공감이 간다. 물론 ‘각 분야의 하이에나들’ 속에 언론인들도 포함돼 있음을 누구나 모를 리 없다.
“대통령이 된 후 검찰과 정보기관을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았고, 지방분권과 사법개혁 분야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렇다. 이 부분은 필자가 노사모가 아니더라도 인정해야만 하는, 노무현이 남긴 위대한 족적이다. 그러나 노무현이 재임기간 대부분을 바쳐 남긴 족적은 오늘날 흔적이 없다. 과거의 권력기관의 가치들, 탐욕의 부동산 가치들만 북적댄다.
Ⅲ.
필자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운 적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필자는 친한 급우와 운동장 한가운데서 ‘꺼이꺼이’ 목을 놓아 운적이 있다.
지금 기억컨대, 당시 통곡의 명분은 아마도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었다.그만큼 박통의 권위는 어린시설 나의 뇌리에 강렬했다.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문하는 사람들 중 꽤 여럿이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 운다. 나이도 어리지 않은데 말이다. 나는 그 사람들의 마음을 제법 헤아린다. 그 사람은 필시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걱정을 하고 있는 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통상 부정적 의미의 고단수 정치인이었을 지도 모른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뒤 남의 말 함부로 하길 즐겨하는 사람들이 “자존심이 너무 강해서 자기 분을 못 참고, 털끝만한 자기오류를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는 독선적인 사람”이라고 평하는 게 어쩌면 사실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한국정치에 남긴 족적은 수십 년 장기집권을 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그것을 능가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놀랍다.
노무현은 실제로 자신이 하지 않았지만, 억압 받는 여성들에게, 사교육에 찌든 학생들에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취업난에 허덕이는 젊은이들에게, 학벌에 가위 눌린 대다수 짧은 가방끈들에게, 무슨 ‘해방의 복음’ 같은 것을 들려주는 듯 했다.
사람들은 노무현이 실제로 ‘해방의 복음’을 들려주는 게 아니라는 점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그가 ‘해방의 복음’과 필시 관련이 있다고 믿고 있었다.
정치인으로서 놀라운 능력이다. 하지만 정치인의 능력이 단순한 테크닉의 집합체라면 이 정도의 놀라운 성과를 발휘할 수 없다. 진정성이 없다면, 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들을 위한 ‘해방의 복음’의 진원지에 노무현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그를 거울삼아 해방감을 맛보았고, 탈권위주의의 짜릿함과 “꿈은 이뤄진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여러 패착과 실수, 실패에도 불구하고 고 노무현의 가치는 그래서 오롯이 빛나는 게 아닌가 싶다.
Ⅳ.
“그 어떠한 조건 없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안식을 빌어마지 않는다.”
글자 한 자, 토씨 하나 안 빼고 똑 같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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