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곳이 없다고 하더라도...
비록 기억하기 싫은 과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사람들 마음속에 남아 있는 노스탤지어는
가끔씩 한참을 멍하게 만들며 아련하게 만드는 마술이다.
그것이 자신의 어릴 적 뛰어놀던 고향길이든
때로는 아프게, 때로는 따뜻하게 맞아주었던 집이든
열병처럼 이유없이 아파했던 첫사랑이든
세월이라는 양탄자를 타고 이미 시간을 이만큼 지나와 있을때
사우나탕 안에서 모래시계를 뒤집었을때
이미 과거의 시간이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 못한채
그냥 빈 공간 속의 뿌옇게 서린 김처럼
노스탤지어는 그렇게 뿌옇게...
하지만, 가슴속 깊이 파고들어왔다 사라진다.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내 인생 최고의 영화중 하나'라는 꼬리표가 붙을만큼 너무나도 유명한 영화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
시네마 천국은 아마도 그러한 노스탤지어를 가장 잘 담고 있는 영화 중 하나라고 할 것이다.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때가 언제인지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처음 보았을때 보다 두번째, 그리고 세번째 보았을 때
가슴이 턱 막혀 차오르며,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던 것이다.
점점 나이를 먹어가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영화를 너무 새겨 두어서일까?
최근 다시 보고 나서도 한참을 멍하게 있게 하는 건...
이 영화에 대해 여러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 중에서 가장 큰 이야기는 노스탤지어라고 말하겠다.
작은 마을의 광장을 중심으로 한 풍경 속에는
항상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과 함께 하는 극장이 있었다.
모두 서로가 다 알고 항상 같은 자리에서 영화를 보는 마을사람들..
채플린의 영화를 보고 배가 빠져라 목청 높여 웃고, 남녀노소 가릴것 없이 손수건을 갖고 눈물을 흘리며,
대사를 외울정도로 반복해서 영화를 보았던 사람들...
글쎄... 약간은 오버라고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당시 영화의 힘과 위치를 생각해 본다면 큰 과장도 아닐 것이다.
온갖 멀티미디어가 함께하는 지금과 비교를 한다는 건...
흑백시대... 마을의 한 극장이란 단순히 영화를 감상하는 곳을 넘어서 그들의 문화생활 전부였으며, 휴식공간이었고, 안식처였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은 그다지 먼 역사책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흑백장면이 문득 떠오른다.
동네마다 떠돌이 악극단이 찾아와 무대가 오르면 모든 마을사람들은 손을 잡고, 무대를 주시하며 무성영화배우의 연기나 무대배우의 연기에 따라 목청을 돋우는 연사의 목소리에 울고, 웃었고 써커스단이 언제 오나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가 광대의 우스꽝에 배를 잡고, 공중곡예에 손에 땀을 쥐었던...
시대가 흘러 사람들은 더 이상 극단이나 써커스단은 볼 수 없지만, 활동사진이 흐르는 극장이라는 곳으로 사람들은 또한 몰리게 된다.
그리고... 내가 어릴적 아버지의 손을 잡고 따라갔던 극장에서만 해도 영화 중간마다, 그리고 엔딩이 올라갈때 박수에 인색한 우리 나라 사람들도 영화를 이야기하며, 웅성거리고, 그렇게 박수를 쳤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느샌가 스크린의 감동을 안방에서 느끼기에 익숙해져 버렸다.
50년대 흑백영화의 아련한 노스탤지어를 나처럼 직접적으로 겪지 못한 세대조차 이 영화는 이끌어 내고 있다. 그것도 절대 천하지 않고, 아주 아름답고도 고상하게 말이다.
이는 항상 그렇지만, 세대의 교차점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던져주고, 또한 이끌어 내는 마술이다.
토토의 나이처럼 지금은 흰머리가 수북히 덮혀가는 수많은 헐리우드 키드를 꿈꾸던 우리 아버지 세대와
그리고 아련한 기억 속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그것을 몸속으로 물려받은 젊은 세대에게
알프레도와 토토, 그리고, 엘레나의 이야기는 어떤 이에게는 가슴이 북받쳐 오르게...
혹은 어떤 이에게는 아련하게 밀려온다.
토토라는 주인공의 일대기적 영화의 성격은 또한 이러한 신구의 변화와 세월의 가르침을 너무나도 정직하고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주인공들의 나이가 변하는 만큼 영사기도 변하고, 영화도 변하고, 극장도, 마을도 변한다.
그리고...
변하지 않을 것 같던... 언제나 그렇게 마음속에 영원히 그대로 남아 있을 것 같던 사람들도 결국 변한다...
어쩌면 변하지 않는 건 평생토록 자신만의 광장을 지키는 한 미치광이뿐일지도 모른다.
이젠 더이상 사람들이 찾지 않은 극장...
알프레도, 토토,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지난날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던 그 극장이 무너지는 날...
이미 세월의 변화를 말해주듯 토토를 비롯한 옛 마을 사람들은 아쉬움에 눈물 흘리고, 엘레나의 딸과 젊은이들은 웃고 있다!!!
그리고...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토토와 엘레나도... 30년간의 미련을 터트려 버린다.
사실 영화를 보았던 많은 사람들은 알겠지만, (나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처음 보았던 이 영화에서 토토가 다시 돌아왔을때 엘레나와 재회하는 장면은 없었다.
영원히 머물러 있기를 바라던 토토의 노스탤지어조차 아쉽게도 새롭게 뒤에 나온 감독판 신시네마 천국(new cinema paradiso)판에서는 첫사랑 엘레나를 만나면서 깨어지고 만다.
개인적으로는 약간 실망스러운 부분이었다. 차라리 감독판을 보지 않았었더라면.. 하는 후회도 든다. 첫사랑은 이루지 못했을때 더 아름답다는 이야기때문일까? 많은 사람들이 그런 아쉬움을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감독 쥬세페 토르나토레가 그런 장면을 굳이 담은 이유는 어쩌면 그러한 세월의 변화 속에 첫사랑의 노스탤지어를 한번더 강조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엘레나와의 재회...
서로가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음을 확인하고, 결국 과거에 다시 만나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알프레도인 것을 알게 된 토토는 엘레나에게 다시 만나자고 하지만, 늘 그랬듯 엘레나의 대답은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다.
'우리에겐 미래는 없어. 오직 과거만 있을 뿐이야. 지난 밤은 꿈이었을 뿐이야.
아름다운 우리가 어렸을때는 이루지 못했던 꿈... 이것보다 더 좋은 엔딩은 없다고 생각해...'
하지만, 토토는 이런 엘레나의 대답을 끊어 버린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절대...'
누구에게나 한번쯤 있어 봄직한... 그리고, 누구나 한번쯤 자신의 경우를 상상해 봄직한 그런 노스탤지어의 공감대를 끌어 내고자 한다. 내가 토토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아쉽게도 토토는 결국 엘레나를 진행형으로 간직함으로써 기대했던 노스탤지어를 무너뜨리고 마는 이중적 역설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음을 알고 다시 떠나는 토토의 모습은 결국 세월과 현실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그리고 소리없이 내뱉어 준다. 그러기에 더 시리고 아련한 것일까?
100일동안 기다리는 병사가 공주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99일째 떠나버렸던 것처럼 알프레도가 토토에게 마을을 떠나 돌아오지 말고, 향수도 하지 말라던 그 말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대사가 아닐까 한다.
결국은 알프레도도 토토도, 그리고 모두가 가지고 있는 노스탤지어는 지금의 자신이 있는 바탕이다.
비록 알프레도의 말처럼, 아니 굳이 말을 듣지 않고, 스스로 고향을 떠나서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 속에서도 한 구석에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노스탤지어가 숨어 있다.
세월 위에 얹혀 살 수 밖에 없는 우리 인간들의 숙명을 동화적이긴 하지만, 너무나도 정직하게 담아낸 것이 이 영화를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에게 간직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이 영화를 우리 기억속에 깊이 남아 있게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영화음악을 빼 놓을 수 없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영화의 압권은 마지막 키스씬 장면이다.
그렇게 보고 싶어해도 볼 수 없었던 비내리는 화면속에서 계속 해서 등장하는 키스씬은 세월이 한참 지나서야 빛을 보게 된다.
알프레도가 남긴 마지막 선물을 바라보는 토토의 표정을 어느샌가 내가 똑같이 지으며 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 떨려오는 전율은...
그러한 마술... 글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는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불과 10년전만해도 종종 찾아가곤 했던 종로 3가... 그 곳에 단성사와 피카디리 극장을 유난히 자주 갔었다.
그러나, 어느 샌가 그 장소는 예전 모습이 사라졌고 대신 길 건너 높은 빌딩에 멀티플렉스라는 이름의 새로운 극장이 생겨 나를 당혹케 했던 때가 기억난다.
영화 속에서 극장이 무너지는 장면에서 왜 갑자기 그렇게 이 생각이 간절하게 떠올랐을까?
비내리는 흑백영화의 화면과 지직거리는 턴테이블의 LP레코드 소리를 더 좋아하고, 아직 CD나 MP3보다 카셋트 테이프를 훨씬 더 즐겨듣는 나는...
어쩌면 변해가는 세월과 내 모습 속에서 이미 노스탤지어에 빠져
그 달콤함 속에서 나오기 싫어하는 피터팬일지도 모른다...
<한국납세자연맹 최성준 정책기획팀장>
 댓글[1] |
| midsummer [2009-08-05 15: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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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최고의 명작이죠... 특히 마지막 동영상을 보니 더욱 다시 보고 싶어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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